[Retro] New Beginning 2021: 퇴사

나는 이제 3년차가 넘는 웹 개발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달에 퇴사를 한다.

이직이 아니고 퇴사이다.

이직할 직장을 구하고 퇴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몇 달간 이직 준비를 했지만, 나의 뇌는 이미 방향을 정한 것 마냥 서비스 개발 관련 직종에는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글로벌 대기업 면접을 하루 앞두고도 아무런 긴장이 안 될 정도였다.

퇴사를 결심하고 입밖으로 꺼내기까지 나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사회가 던질만한 질문, 퇴사를 반대하는 또 다른 나의 질문, 내 목표에 대한 질문 등등. 그리고 그 질문 하나하나에 답변을 하고 나니, 퇴사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미디어 아트, Creative Technology, Creative Coding 뭐 이런 분야로 가기 위해 조만간 퇴사를 한다.

'똑같은 개발 아니야? 그냥 더 좋은 회사를 가면 리프레쉬 되지 않을까?'

사실 '서비스 개발을 하면서 무슨 희열이 느껴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 더 이상 이런 일은 나에게 재미가 없겠구나' 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비스의 어떤 특정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일은 당연히 개발 실력을 성장하는 데에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나에게 일의 보람을 안겨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나중에 내 사업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긴 하겠다.) 하지만 단순히 앞으로 그 어떤 비즈니스 서비스 개발도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업이나 비즈니스에는 나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프로덕트의 가치나 의미가 나의 가치관과 잘 부합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기술을 더 많이 사용해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면 분명 더 의욕이 있을 것이다.

'꼭 퇴사를 해야 되? 적당히 워라밸 챙기면서 남는 시간에 하면 안되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작업할 수 있는 회사들을 찾아보았다. 현재 내가 가진 역량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Creative Technology, 아트앤 테크놀로지 분야와 더 관련된 개발 언어나 툴을 공부하거나,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요즘 내 작업을 보고 연락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더 작업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졌다. (메타버스 어쩌고 트렌드 때문에 생긴 반짝 열기일지도 모른다.) 그 기회들이 정말 마지막까지 잘 성사될지는 두고 봐야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기회에 충실하고, 앞으로의 비슷한 기회에 준비가 되어있으려면, 더 이상 9-6 회사의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는 이 산업과 업계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실력만 있다면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본다. 몇 년간 작업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확신을 기저에 쌓아왔기 때문에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부업처럼 하면 되지 않아?'

이미 3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와 공부와 전시를 해왔다. 첫 1년은 딥러닝을 공부했고, 두번째 해에는 인터렉티브 아트 공부와 전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3번째 해에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내 작업을 더 적극적으로 올리고 내 브랜드라는 것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이드로 하기에는 나도 점점 지쳐가고 현타가 온다.

초반에는 나도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확신이나 세부적인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개발 실력과 경력을 먼저 쌓고 싶었다. 만약 내가 나중에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더라도 회사를 다닌 경험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제는 점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이 명확해지고 많아지는 만큼 퇴근 후의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기반을 더 다져놓고 나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지금 시작하든 나중에 시작하든, 평생 9-6 직장인으로 살지 않는 이상,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안전한 길이 아니다. 나도 드로우앤드류처럼 구독자가 천명, 이천명이 넘고 나서 퇴사를 한다면 좋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베스트 케이스를 나의 가이드로 삼기에는 상황이 다 다르다. 지금 나의 상태로는 회사를 다니면서 전시도 하고 개인작업도 하고 유튜브도 하는 생활을 오래 끌고 가지 못할 것 같다. 지금 내가 최상의 독립 요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과 디딤돌 정도는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일단 뭐라도 결정하라'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 불안과 걱정을 촉발한다. 대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많을수록 더 불쾌해진다. 걱정해야 할 게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선택의 폭을 좁히고 가능한 한 빨리 결정을 내려라.

우울할 땐 뇌과학 이라는 책을 요즘 읽고 있다. 걱정이 많은 성향으로서 위 문장은 정말 공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선택지를 좁혀야 할 때라고 깨달았다. 나의 뇌는 이미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내가 계속 억지로 다른 옵션을 제시하면서 선택지를 넓히고 있었다.

예를 들어, A 사람이 분명한 내 취향이고 나와 잘 맞다는 걸 알지만, 자꾸 다른 이유를 대면서 B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현타가 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면접 전에도 의욕이 없고 긴장이 잘 안되었다. 내 뇌의 90%는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이미 정했는데, 나머지 10%가 '혹시?' '어쩌면?' 하면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근 2년 간,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되면, 정말 나 혼자 내가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개발하고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고자 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더 이상 회사의 제품이나 이런 서비스의 부품을 코딩하는 게 즐겁지 않아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아충돌같은 스트레스가 불쑥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모르는 것이라도 찾아보면서 공부하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다.

나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출퇴근의 피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계획은 뭐야?'

엄청난 계획은... 아직 세우는 중이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되면, 아마 계획보다는 유연성과 대처 능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계획하던 일이 조금 틀어지거나 엎어져도 너무 실망하지 않고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회복력이 중요할 듯 싶다.

그래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와 우선순위는 정해두는 것이 좋겠다.

첫번째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더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 컨텐츠를 만드려면, 내가 하고 싶은 작업 시리즈를 잘 구상하고 필요한 스킬을 공부해야 한다. 하루에 2-3시간은 꼭 공부하고 작업하는 데에 할애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기획하고 구상해서 n일짜리, n달짜리 프로젝트를 연재하고 싶다. 1일 1포스팅을 하고 싶지만, 힘들다면 2일 1포스팅이라도 하고 싶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인터렉티브 웹사이트 만들기, 쉐이더와 3D 작업, Unity / Unreal / Touch designer 툴 활용하는 것이다. 주제나 테마는 어느 정도 정해놓았고 스토리텔링을 고려하면서 작업하고 싶다.

기존 강의들을 복습하면서 유튜브 튜토리얼을 더 짜임새 있게 만들어보고, 내 작업에도 응용할 것이다. 그리고 수학적 알고리즘을 코딩으로 바꿔보고, 비쥬얼과 인터렉션을 구현하는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싶다. computer graphics 강의를 찾아봐야겠다.

두번째는 몇 가지 지원사업이나 콜라보 작업을 하면서 영역을 넓혀 갈 것이다. 내가 관심있는 오픈소스에 기여를 한다거나, 지원사업에 참여해보거나, 좋은 전시 기회가 있으면 함께 하고싶다.

세번째는 포트폴리오와 블로그를 주기적으로 작성하고 관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뉴스레터와 웹사이트로 커뮤니티 빌딩을 꾸준히 할 것이다.

이 글에는 creative tech 내용 위주로 썼지만, 이제 직장인이 아니니까 투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투자 관련 책과 유튜브를 읽고 매일 조금이라도 정리하는 습관을 쌓을 것이다. 데일리 리츄얼이 된다면, 그 기록을 모아서 작업으로도 만들어 보고 싶다.

'시간이 생기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라고 생각만 했던 것들을 이제는 진짜 실행해야 한다. 정말 시간이 생겼을 때, 내가 원했던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테스트하는 기분이다. 의심이나 걱정보다는 확신과 믿음으로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