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에 글또 4기 프론트 첫 모임을 가졌다. 다양한 개발 이직, 면접, 특이했던 질문들을 서로 나눴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게 인성 면접에서 나온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라는 질문이었다.
스트레스라는 게 없을 수가 없는 세상이고, 그 스트레스를 잘만 이용하면 나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끌려다니면 가라앉는 것 또한 순식간이다. 잡음이 너무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나를 알고, 내 스트레스의 원인을 알고, 나만의 해결법을 구축하는 과정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한 번은 사춘기처럼 겪어보고, 트러블슈팅해보고, 개선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개발자같은 발언인가;;)
생각해보니 직군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포인트가 너무 달라서,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다소 답답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직군끼리는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서로 끄덕여지는 그런 스트레스...
내 성격인 것 같다가도, 모두가 느낄만한 스트레스 - 개발을 하다가 자꾸 에러나 버그가 잡히지 않을 때는 정말 한숨만 나온다. 구글링과 스택 오버플로우를 열심히 뒤져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다보면, 그 이후엔 그냥 영혼 없이 이거저거 누르지만 설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특히 나같은 경우는 커피를 마셨을 때, 말초신경이 꽤 자극되는 체질이라 하이퍼 상태에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집중이 안된다. (그래서 요즘은 커피 대신 차를 마시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스트레스는 개발자/tech 관련 종사자로서...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분야들도 배울 게 너무나 많을 것이다. 헌데 가끔 개발은 기존 실력 + 응용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실력을 쌓아야 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자꾸 자꾸 새로 배워야 할게 늘어나는 압박감? 물론 그만큼 개발자로서의 내 펀더멘탈이 아직 탄탄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전에는 자꾸 안주하게 되는 사무직이나 단순 업무를 반복해도 되는 일들을 거치다보니, 계속해서 발전하고 배우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개발 일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내 성향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되어서 선택했다. 실제로도 그 점은 매우 만족스럽지만, 배우다보면 '도대체 언제까지..?' 라는 생각에 가끔 막막할 때가 있다.
조급하게 마음을 먹어봤자 의미가 없는 걸 알면서도, 다른 경력자들에 비해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고 피드백을 받을수록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피드백을 받을 때 개인적인 상처는 거의 받지 않는다. 미국에서 워낙 토론과 의견 충돌을 많이 겪다보니, 그런 건 꽤나 단련되었다. 토론을 하다보면 격해지는 건 있겠지만, 그걸 personal 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물론 공격성 발언을 한다면 참지 않긔-)
Anyways, 그래서 처음 이직을 하고 얼마 안가 스트레스를 팍! 받았고, 미국 개발자 친구가 이직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다는 가면 증후군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여하튼 어느 정도의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스트레스를 잘 다루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케어해주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내가 뉴욕에 있을 때 일했던 fortune 은 매년 fortune 500 기업 리스트부터 best workplace 리스트들을 뽑으며 각 회사별로 복지(영어로는 company perks 라고 한다)가 얼마나 좋은지도 고려해서 랭킹을 매겼다. 나도 그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다양한 기업들의 문화나 특징(corporate culture)을 보았고, 우리 회사 자체도 stress-free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소소한 이벤트들을 회사에서 열어줬다.
Stress-free environment, personal happiness = Productivity
스트레스가 없고, 개인의 행복과 만족감이 높을수록 일의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하는 기사들이 수십개 수백개이다. 의식이 깨어있거나 규모가 크거나 브랜드를 신경써야 하는 위치의 회사들은 복지를 많이 챙겨준다. '우리가 잘 챙겨주는 만큼 너희도 잘 일해줘' 라는 윈윈의 마인드랄까.
스티브 잡스가 명상의 중요성을 적극 활용한 인물로 유명하고, 실제로 여러 미국 기업들이 요가나 명상 워크샵을 운영한다는 기사가 많다. 걷기가 뇌 활동과 리프레쉬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자연 산책로를 구축한 회사도 있었다. 내 전 직장에서도 무료 마사지 서비스가 있었다. 한국 블라인드 앱에서 각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를 서로 공유하는 글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복지를 직원들이 얼마나 잘 활용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고 생산성이 높아지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요즘 자아 성찰을 몇 달 간 빡세게 했다. 자꾸 걱정이나 잡생각이 올라올 때는 명상 앱을 들어서 나를 객관화하고 나의 생각을 객체화해서 분리한다. 교회 소모임에서는 이런 저런 고민, 깨달음, prayer requests 를 나누고, 친구들과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내 스트레스의 근원, 내가 무의식 중에 스트레스를 키우는 법, 그걸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법 등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스트레스는 가장 개인적인 생각이고 감정이다. 그래서 공감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도 너무 많다. 누군가 내 스트레스에 대해서 핀잔을 주고, 나를 멘탈이 약하거나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으로 몰아가면, 순식간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에게 가끔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어려울 때도 있다.
실제로 자신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멘탈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큼 상대방의 고민이나 스트레스에 공감을 못하는 (건지 말을 잘 못하는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모습을 보고 점점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냥 불편하고 우울한 게 싫으니까 스트레스를 피하고 무시한다는 느낌? 예전의 나도 그런 경향이 있었는데, 그 때는 아예 우울한 노래들은 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오히려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confront 하고 해소하는 게 (내 기준에서는) 건강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묵직한 스트레스가 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건지 분석한다.
스트레스에도 종류가 여러가지더라.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무기력 우울감 외로움이 있고, 근본적으로 해소가 필요한 고민이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럽스타그램을 보다가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문득 외로워지는 기분 vs 최근에 너무 공부/일만 하느라 누군가와 속 터놓고 수다 떨은지가 몇 달이 넘은 상태에서 오는 번아웃같은 외로움 이랄까.
전자는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아이유가 말한 것처럼) 몸을 움직이거나, 덕질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면서 해소될 수 있겠다. 반면에 후자는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바뀌는 게 없다. 내 관점을 바꾸거나 내 습관을 바꾸거나. 뭐라도 변화를 시도해서 긍정적으로 나아지는 성과가 보여야지 만족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싫은 사람이라면 1. 스트레스를 부정하거나 2.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을 듯 하다.
회사들이 제공하는 훌륭한 복지들은 결국에는 해소 방법들 중 하나이고, 표면적이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 몇 분의 휴식이 필요할 때는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이 일에서 내가 느끼는 보람이 뭔지, 왜 나만 ~~하는지 등 나 자신과의 대화, 상사와의 대화, 동료의 위로, 심리 상담, 혹은 내 생활 패턴의 의도적인 변화 같은 게 필요한 스트레스는 그런 가벼운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수많은 복지들을 제공하고, 고객의 소리 마냥 '불편하거나 힘든게 있으면 말해줘^^' 라는 인사팀이 있어도 진정으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스트레스를 잘 극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어떨 때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별 의미없는 생각들이 많이 올라오는 뇌라서 명상이 필요한지, 운동을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 언제 번아웃이 되어버리는지 등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수록 모르는 게 자신이기도 하다.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이유 중 하나가 연애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웃기면서도 이해가 된다. '나'는 '나'에게 가장 편하기 때문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알지 못한다. 계속 어떤 상황에 부딪히고 누군가를 만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지점을 찾아나간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찾고 자아를 구축한다. 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걸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단, 그게 단순한 보여주기 허세인지 정말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연습인지는 본인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이 많고 내 행동과 스트레스를 분석하는 스타일이다. 최근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다가 내가 에너지가 많아서 그렇다는 말을 듣고 린정-해버렸다...
순간적인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에는 크게 빠지지는 않고, 주로 운동을 하거나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면 풀린다. 춤을 추거나 전시를 가는 등 몸으로 움직이면서 털어내기도 한다. 에너지를 풀 곳이 없으면 점점 쳐진다. 그래서 코로나 때 헬스장을 못 가서 뭔가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었다. 이런 사태를 처음 겪다보니 초반에는 인지를 못했는데, 나중에 '아 나는 운동을 하든 뭘 하든 자꾸 움직이고 돌아다녀야지 이 에너지가 잡생각으로 안 가는 스타일이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스트레스가 없던 때와 많은 때를 비교해보면서 깨달은 게 많았다.
뉴욕에 있을 때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왜 스트레스를 안 받았을까. 그 때는 거의 매일 퇴근을 하고 워크샵이나 이벤트를 가거나 조깅을 했고, 주말에는 전시를 보러 다녔다. 이렇게 에너지를 다 쓰고 다니니까, 고민이나 불만이 있어도 그게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고민은 주중 메이커스 워크샵과 주말 공부를 통해서 조금씩 채워나갔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서울 중심부에서 집이 멀고, 회사도 작년까지는 판교여서 퇴근하고 놀 곳도 없었다. 공부를 빡세게 했을 때는 나의 부족한 실력에 실망하고, 내가 원하는 목표는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현저히 크다보니, 현재에 대한 불만족도 무의식중에 쌓여갔다. 심지어 페미니즘, 인권 이슈, 해외 경험 등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어려웠기에 사교 활동은 거의 안했고, 나랑 전시나 파티를 같이 다닐 친구도 딱히 없었다. 7년간 독립 생활을 하다가 다시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살다보니 가족에 대한 내 불만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작년에 한 때 취미 생활을 열심히 했을 때 - 춤, 전시 보기, 독서 모임 - 는 몸은 지쳐도 멘탈은 괜찮았다. (물론 체력도 너무 중요하다..)
전시 관람이 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은근히 다리 아프고 1-2시간은 꼭 소요되는 활동이다. 게다가 보면서 자꾸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되서 에너지가 상당히 필요한 액티비티이다.
명상 앱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내가 해소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불만은 직접 무언가를 실천함으로써 바꿔나가고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스트레스의 원인들은 포기하거나 나의 관점을 바꿔본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무리해서 하려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자만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원인이라면, 그 테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본다.
나는 미래 지향적 목표 지향적인 성향이 있어서, 취미는 그 반대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불안이나 잡생각을 잠재워야 한다. 내가 그동안 좋아했던 취미들을 되돌아보니, 정말 그 순간에 집중해야만 해서 다른 잡생각이 안드는 활동들이더라. 소오름.
그리고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별 의미없는 생각이 올라올 때는, 얼른 명상이나 다른 휴식 활동으로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습관도 만드려고 하고 있다.